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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인문학

유리의 인문학 투명함이 건축에서 갖는 의미

by HARAM95 2026.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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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인문학 유리 · Glass 건축 재료

유리의 인문학
투명함이 건축에서 갖는 의미

단열재가 열을 막고, 콘크리트가 무게를 지탱한다면 — 유리는 무엇을 하는가.
그것은 안과 밖의 경계를 만들면서도, 동시에 그 경계를 지운다.

 

하람
하람 · 재료 인문학 시리즈 #94 · 2026.07.13
빛을 담는 파사드 — 커튼월 유리 건축의 현장
현장 에피소드
준공 3일 전, 지상 38층 오피스 현장에서였다. 커튼월 외벽 최종 점검을 마치고 잠시 창가에 섰을 때 — 발밑으로 서울 도심이 한눈에 펼쳐졌다. 그 순간 이상한 감각이 들었다. 분명 실내였는데, 경계가 없었다. 안에 있으면서 밖에 있는 느낌. 두께 24mm짜리 복층유리 한 장이 만들어낸 감각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유리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단열 성능 수치로만 보던 시각이 달라졌다. 유리는 단순한 창문 소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건축이 인간에게 '어떻게 세계를 보여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재료였다.

유리, 단순한 창문이 아니다

건축에서 재료는 저마다의 언어를 가진다. 벽돌은 무게와 영속성의 언어를 말하고, 목재는 온기와 유기적 질감의 언어를 말한다. 그렇다면 유리는 무엇을 말하는가.

 

유리는 투명함의 언어를 말한다. 그런데 이 투명함은 단순한 물리적 속성이 아니다. 건축에서 투명함은 곧 경계의 소멸이다. 안과 밖, 내부와 외부,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를 허물거나 재정의하는 것 — 그것이 유리가 건축에 가져온 혁명이었다.

 

오늘날 도시 스카이라인에서 가장 지배적인 재료는 무엇인가. 콘크리트도 철도 아닌 — 유리다. 현대 도시는 유리로 만들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유리는 20세기 이후 건축의 언어 자체가 됐다.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유리의 역사부터 짚어야 한다.

투명함의 역사 — 유리가 건축에 오기까지

중세: 빛은 신성이었다

건축에서 유리가 처음 큰 역할을 맡은 것은 중세 고딕 성당에서였다. 12세기 프랑스 생드니 수도원을 기점으로 한 고딕 건축은 두꺼운 돌벽을 최대한 줄이고 그 자리에 스테인드글라스를 채워 넣었다. 당시 유리는 색을 입혀 빛을 굴절·변형시키는 '신성한 빛의 매개'였다. 투명하게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빛 자체를 성스럽게 변형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시기 유리는 오늘날과 달리 불균일하고 두꺼웠다. 기술의 한계로 유리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유리를 통해 다른 세계를 '느끼는' 경험이었다.

산업혁명: 철과 유리의 결합

유리가 건축의 구조적 파트너가 된 것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다. 1851년 런던 세계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조셉 팩스턴의 수정궁(Crystal Palace)은 전환점이었다. 철제 프레임에 유리 패널을 끼운 이 건물은 당시로서는 전례 없는 구조였다 — 벽이 사라지고 빛이 건물 전체를 채웠다. 수정궁은 유리가 단순한 창문 소재가 아니라 건물 자체가 될 수 있음을 세상에 선언한 건물이었다.

바우하우스와 미스: 투명함은 이념이었다

20세기 모더니즘 건축가들에게 유리는 재료 이전에 이념이었다.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는 "건축에서 유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투명함은 정직함이었고, 불필요한 것을 걷어낸 순수함이었다. 1951년 완공된 파른스워스 주택은 사방이 유리로 둘러싸인 공간이었다 — 집이 자연 속에 떠 있는 듯한, 경계 없는 거주의 실험이었다.

 

이 철학은 이후 커튼월(Curtain Wall) 공법으로 전 세계에 확산됐다. 건물의 구조를 철골이 담당하고, 외벽은 단지 '커튼'처럼 달린 유리로 마감하는 방식.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도시의 오피스 빌딩은 이 언어를 일제히 채택했다.

단판·복층·삼중·로이유리 단면 구조 비교 — 건축용 유리의 종류

현장에서 만나는 유리의 종류

인문학적 맥락을 알았다면, 이제 현장의 언어로 돌아온다. 건축 현장에서 유리는 구성과 기능에 따라 크게 구분된다.

단판 → 복층 → 삼중: 단열 성능의 진화

단판유리(Single Glass)는 하나의 유리판으로 구성된 가장 기본적인 형태다. 단열 성능이 낮아 현대 건축에서는 인테리어 파티션이나 내부 칸막이 용도로 주로 쓴다.

 

복층유리(Double Glazing)는 두 장의 유리 사이에 건조 공기 또는 아르곤 가스를 넣은 구조다. 열관류율(U값)이 단판 대비 약 50% 낮아 현재 아파트 창호의 표준이다. KS L 2004 기준으로 에너지 절약 설계에서 창호 열관류율 1.5 W/㎡·K 이하를 요구하며, 복층유리는 이 기준의 필수 전제다.

 

삼중유리(Triple Glazing)는 유리 세 장 사이에 두 개의 공기층을 만든 구조다. 열관류율 0.7~0.9 W/㎡·K 수준으로 패시브하우스급 단열 성능을 낸다. 최근 에너지 절약 기준이 강화되면서 고급 주택과 공공 건물에서 채택이 늘고 있다.

로이유리(Low-E): 에너지 시대의 주인공

로이유리(Low Emissivity Glass, 저방사유리)는 유리 표면에 금속 산화물 코팅을 입혀 복사열을 반사시키는 유리다. 여름엔 외부 열을 차단하고, 겨울엔 내부 열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한다.

 

국토교통부 「건축물의 에너지절약설계기준」(현행 고시)에서 중부 지역 공동주택 창호에 로이유리 적용을 사실상 의무화하고 있다.

강화유리와 접합유리: 안전의 언어

강화유리(Tempered Glass)는 고열(600℃ 이상) 가열 후 급냉시켜 표면에 압축응력을 형성한 것으로, 일반 유리 대비 3~5배 강도를 갖는다. 파손 시 날카로운 파편이 아닌 작은 알갱이 형태로 파쇄되어 안전하다.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 제17조에 따라 높이 2m 이상 창 및 출입구 유리에 안전유리 사용이 의무화돼 있다.

 

접합유리(Laminated Glass)는 두 장의 유리 사이에 PVB 필름을 삽입해, 충격으로 깨져도 파편이 필름에 붙어 있게 한 유리다. 고층부 커튼월과 지붕 유리, 방음이 필요한 공간에 주로 사용한다.

현장 메모
38층 커튼월 현장에서 감리할 때 가장 자주 확인하는 항목이 유리 스펙 적용 여부다. 도면에 '24mm 복층 로이 강화유리'라고 명시돼 있어도, 단가를 낮추려 일반 복층유리를 넣는 경우가 실제로 있다. 유리 측면에는 제조사 코드가 각인돼 있어 스펙 확인이 가능하다. 이 한 가지 차이로 건물의 에너지 성능이 완전히 달라진다.

유리가 말하는 건축의 언어

유리의 물성을 이해했다면, 다시 인문학적 질문으로 돌아온다. 왜 현대 건축은 이토록 유리를 선택하는가. 세 가지 언어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유리는 빛을 민주화했다. 고딕 성당에서 빛은 신에게만 허용된 언어였다. 하지만 커튼월 시대의 유리는 빛을 건물 안 모든 공간에 평등하게 분배한다. 어두운 복도와 창 없는 내실이 사라지고, 어디서나 하늘을 볼 수 있는 공간이 탄생했다.

 

둘째, 유리는 공간의 연속성을 만든다. 내부와 외부가 시각적으로 연결될 때, 인간은 더 넓은 공간 안에 있다는 감각을 얻는다. 좁은 아파트에서도 통유리 창이 있는 방이 더 넓게 느껴지는 이유다.

 

셋째, 유리는 시간을 담는다. 아침 햇살, 오후의 그림자, 저녁 노을 — 유리는 시간의 흐름을 공간 안으로 끌어들인다. 같은 방이 아침과 저녁에 전혀 다른 표정을 갖는 것, 그것은 유리가 있어야만 가능한 건축이다.

안에 있으면서 밖과 연결되는 유리 건축 — 공간의 연속성

창호 선택할 때 실무자가 보는 것

아파트 창호를 교체하거나 인테리어를 계획할 때 유리 선택 기준을 정리했다.

실무 체크포인트 5가지
① 열관류율 확인 — 창호 스펙에서 U값이 1.5 W/㎡·K 이하인지 확인. 중부지방 에너지 절약 설계 기준에서 창호 전체(프레임 포함) 열관류율 1.5 이하 요구.

② 로이 코팅 위치 — 복층 로이유리에서 코팅 면 위치가 중요하다. 냉방 중심 기후(여름이 긴 지역)는 #2면, 난방 중심 기후(겨울이 긴 지역)는 #3면 코팅이 유리하다.

③ 강화 여부 확인 — 높이 1m 이상 창이나 출입구 유리는 반드시 안전유리(강화 또는 접합) 적용. 유리 측면 제조사 코드 각인이 없으면 의심해야 한다.

④ 결로 저항성(CRF) — CRF 값이 높을수록 결로가 덜 생긴다. 창호 성능표에서 CRF 50 이상이면 양호 수준.

⑤ 방음 목적이라면 접합유리 — 도로변이나 학교 인근 주택은 PVB 필름 0.76mm 이상의 접합유리 기반 방음 유리를 검토. 일반 유리 대비 소음 감소 효과 약 5~10dB.

 

유리는 경계를 만들면서 경계를 지운다.
그것이 건축에서 유리가 가진, 역설적인 힘이다.

— 하람, 재료 인문학 시리즈

 

참고 자료
  • 국토교통부, 「건축물의 에너지절약설계기준」(현행 고시) — 창호 열관류율 기준
  •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 제17조 — 안전유리 의무 적용 범위, law.go.kr
  • 국가건설기준센터, KCS 41 55 02 「창호공사」 — 시공 및 안전유리 기준
  •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창호 에너지 성능 평가 기준 연구」(2023) — CRF 결로 저항성 지수
  • Kenneth Frampton, Modern Architecture: A Critical History(Thames & Hudson, 2007) — 수정궁과 커튼월의 역사
  • Franz Schulze, Mies van der Rohe: A Critical Biography(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2)
  • 대한건축학회, 「건축재료학」(2022) — 유리 종류 및 성능 기준
하람
하람
건축공학 학사 / 시공사 현직 실무자 6년 + 아파트, 도심 재개발, 공공기관 청사 현장 경험
※ 이 글은 현장 실무 경험과 공개된 건축 기준을 바탕으로 한 정보성 콘텐츠입니다. 구체적인 설계·시공 결정은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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